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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애틀랜타 신인문학상 수상 작품    대상       -   이난순 아버지의 퉁소(시)  최우수상  -   이태희 기다리기(시)  최우수상  -   김철호 벅차오르는 기쁨(수필)         ━   대상      ━   아버지의 퉁소                            이난순   오랫동안 즐기시던 아버지의 퉁소 노래 연주 사고당해 시력을 다 잃었어도 손가락 끝에 눈이 달린 듯 대나무를 용케 다듬어 온갖 종류 퉁소를 만들어내던 탁월한 그 솜씨   방 아랫목에서 펼치는 아버지의 퉁소 연주 아름답고 구슬픈 소리 엮어내며 온 집안을 휘감아 울려 퍼지면 하이얀 광목 앞치마 두르고 밥 짓는 올케언니는 퉁소의 음률 따라 친정 소식 그리움에 목이 메이고 옻칠로 붉어진 둥근 상에서 등 굽은 우리 할머니는 콩을 고르다가 애달픈 노랫가락에 한숨을 짓곤 한다   젖살 오른 막내딸은 퉁소 소리 듣고 아버지를 찾아내고 그 소리 들어가며 키가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솔모랭이만 돌면 귀에 들리던 아버지의 퉁소 소리에 딸의 입가엔 흥얼거림이 시작되고 긴 세월 추억의 노래가 되었다   먼 이국땅   칠십 고개 넘어 나그네 되어 주름진 막내딸 오늘도 먼 고향 하늘 아래 빈 채로 남아있는 고향 집을 향하는데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는 손때 묻은 아버지의 퉁소 소리 그리움에 온 밤을 애간장 태운다     이난순  1948년 충남 청양 출생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결혼 후 세 아이의 엄마가 됨 2014년 4월 미국으로 이민(콜로라도 덴버)    수상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고 기뻤습니다.  시를 쓴다는 마음은 아침에 잠이 깨어 뜨락을 나섰을 때 새벽이슬을 머금은 잔디를 걷는 것.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기억하면서 그분들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아버지의 애틋함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이런 영광을 얻을 수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이들의 응모 작품들 중에 유독 저의 ‘아버지의 퉁소’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직 시를 쓴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완전히 걸음마 단계인 저에게 ‘시작이 반이다'라고 얘기 해주시는 걸로 알고 마음을 열어 시의 세계에 한 발짝씩 디뎌 보겠습니다.     ━   수필부문 최우수상      ━   벅차오르는 기쁨     김철호                                                                                                                                   2013년 12월 26일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다. 순간의 실수로 인해 재판정에 출두하여 지옥과 천국을 함께 맛보았기 때문이다. 한 시간가량 다른 피의자들이 판결받는 것을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반이 넘는 사람들이 빠져나가 재판정은 비어가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재판정 가운데 복도로 5~6명의 경찰관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리고 판사와 무엇인가를 조용히 이야기하고는 다시 돌아 나갔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그러자 갑자기 판사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나는 초조하게 그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여기에 남아있는 여러분, 축하합니다! 아까 들어왔던 경찰관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여러분의 케이스를 모두 ‘경고’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나는 모든 케이스를 ‘경고’로 판결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는 것이 아닌가. 아!...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그득 해오며 뛸 듯한 기쁨으로 가슴이 떨렸다.     내 생일인 4개월 전 2013년 8월 28일이었다. 아침부터 온종일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햇빛은 내 연한 살갗을 태울 듯 따가웠다. 마이애미에서 영성 세미나 참석차 올라온 지인으로부터 둘루스까지 라이드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아내와 함께 편도로 51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애틀랜타 남쪽의 캘빈 센터에 내려갔다. 오후 2시경에 그들을 픽업하여 I-75 고속도로를 지나 I-85로 갈아타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시간이 일러 아직 교통이 정체되지는 않았지만 먼 길을 편안히 달리기 위해 ‘HOV(High Occupancy Vehicle - Carpool) 레인’을 달렸다.    그들은 6개월 전에 떠나온 마이애미의 궁금했던 최근 소식을 들려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화기애애한 대화로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평온하게 운전하며 I-285 교차로에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곧 ‘피치 익스프레스 레인’이 시작된다는 안내판이 나왔다.  ‘피치 패스’가 없었던 나는 차선을 바꾸기 위해서 옆에서 달리는 차 앞으로 들어가려고 속도를 약간 높였다. 그 순간 뒤에서 파란 불을 번쩍이며 유령처럼 따라오는 경찰차가 백미러에 보였다.    고속도로의 바깥쪽으로 나가 차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제일 안쪽 차선에서 바깥쪽으로 차를 몰고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HOV 레인 안쪽의 중앙분리대 가까이에 겨우 차를 세웠다. 이때 경찰관이 손짓으로 분리대 쪽으로 더 바짝 옮기라고 했다. 잠시 후 운전석 옆으로 다가온 그에게 운전면허증을 내어주며 물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사실 나는 다른 차들과 비슷하게 달리고 있었고 차선을 바꾸려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약간 높였을 뿐이었다. “당신은 규정을 어기고 조금 과속했을 뿐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잠시 후 경찰관이 한 움큼의 티켓을 건네주었다. 처음엔 그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해서 단순한 과속 티켓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운전을 계속하여 지인들을 쇼핑센터에 먼저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두 장의 티켓과 빨간색 긴 카드였다.  그 중에 하나는 55마일 속도제한 도로에서 무려 87마일이나 달렸다는 말도 안 되는 과속 티켓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차위반 티켓으로 정차 명령에 얼떨결에 HOV 레인에 차를 세웠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판단 착오였다. 그리고 빨강 ‘슈퍼 스피더 카드’도 덤으로 받았다. 특히 ‘슈퍼 스피더’는 운전자에게는 ‘레드카드’와 같다고 한다.    방어운전 교육 때 강사가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며 절대로 위반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벌금을 살펴보니 과속이 450달러, 정차위반이 117달러, 여기에 보너스(?)로 슈퍼 스피더가 200달러였다. 그리고 법원에 반드시 출두해 재판을 받아야 하며 정규 드라이빙 스쿨 과정의 이수가 필수라고 한다. “아! 이런…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인데, 선물(?)치고는 너무 잔인 것이 아닌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로 인해 포인트와 자동차 보험이 오를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지끈지끈 아파졌다.    작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은퇴 후 정착할 곳을 찾다가 이곳 애틀랜타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올해  2월 말에 이사를 하였고 모든 준비와 이주 과정이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그래서 은퇴 후 삶의 여정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다. 둘루스 지역에는 한인업소가 많다. 특히 대형 한국 식품점과 식당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어서 모든 것이 편리하다. 기후가 좋고 허리케인 같은 천재지변도 없어서 은퇴 후 살기에는 최적지로 이곳에 오기를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새로운 삶에 만족해하며 애틀랜타에 대한 아주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이애미의 지인들에게 은퇴 후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교통법규 위반으로 티켓과 벌금을 무더기로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좋았던 애틀랜타에 대한 이미지가 한꺼번에 모두 깨지는 것 같았다. 처음 6개월 동안의 정착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는데 이제부터 시련이 시작되는 것인가? 갑자기 우울해지고 긴장되었다.      사실 전에도 취직 문제로 마이애미를 떠나 친형이 살던 캘리포니아의 산호세로 두 번이나 이주하려고 했었다. 1983년 봄에는 직장을 찾던 중에 뜻하지 않게 Racal-Milgo라는 영국계의 큰 회사에 미케니컬 엔지니어 겸 산업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에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떠나보려고 했지만 괜찮은 개인 비즈니스를 할 기회가 생겨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 두 번의 사건 모두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 떠나지 못하게 붙드시는구나! 생각되어 다시 마이애미에 눌러살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에 애틀랜타로 이주를 준비할 때에도 만약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냥 머물러 살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너무나 수월하게 진행되어 이것 또한 그의 인도하심이라 생각하고 감사했다.    출두하라는 날 시간에 맞춰 법원에 찾아갔다. 그리고 마음을 졸이며 한 시간쯤 기다렸다. 그때 행정직원이 불러서 앞으로 나갔더니 재판 날짜가 연기되었다며 새 일정은 메일로 통보해 준다고 했다. 참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졌다. 만사를 제쳐 두고 먼 거리를 운전하고 내려와 이토록 오래 기다렸는데 헛걸음을 했단 말인가! 할 수 없이 허탈하고 불쾌한 마음을 꾹 누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달 남짓 후에 출두 명령이 메일로 날아왔다. 봉투를 뜯어보니 ‘2013년 12월 26일 오전 10시’에 법정에 출두하라는 것이다. 아니!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이 아닌가? “젠장, 이 사람들은 연휴도 없나!”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은퇴한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연휴인데… “히히히”, 이런 순간에도 계면쩍은 실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크리스마스의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12월 26일 아침. 온몸이 저절로 웅크려지며 으스스하고 추웠다. 그리고 다시 재판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0여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앞에 있는 행정직원으로부터 순서를 받고 판사의 판결에 따라 하나, 둘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나도 그 직원에게 케이스 번호를 알려주고 재판을 빨리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내 케이스는 반드시 판사의 판결을 받아야 하니 기다리라고만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아마 슈퍼 스피더는 고위험군의 운전자로 특별취급인가 보다. 마음을 졸이며 한참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불쌍한 엉덩이만 아프고 저려왔다.     잠시 후에 일어날 것을 상상도 못 한 채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하던 나에게 재판장은 놀랍게도 ‘경고’의 판결을 내려주었다. 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놀라서 열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단순한 속도위반은 몰라도 슈퍼 스피더인 나에게까지 경고 처분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꿈이 아닌가? 얼굴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역시 꿈은 아니었다. 아! 나 같은 큰 죄인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또 받는구나! 내 생일에 지은 죄가 아기 예수의 생일로 온전히 탕감받아 기록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은혜를 새삼 감사하게 되었고 깨어질 뻔했던 애틀랜타의 좋은 이미지도 다시 온전히 회복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가!...  뛸 듯한 기쁨과 감격으로 목이 메어왔다. 그리고 조용히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김철호(金澈鎬)   1946 서울 출생  1967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5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공업디자인 전공) 졸업  1980 주재원으로 도미(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1081 마이애미, 플로리다 거주  2013 애틀랜타, 조지아 거주  2020 연합 시니어 행복대학 3대 학장     수상 소감  전화벨이 울렸다. “김철호 씨 맞으시지요? 애틀랜타 문학회인데요, 응모하신 수필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머리를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것같이 멍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습작 수준의 작품을 공부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출품해본 것인데…. 더욱 열심히 글을 쓰라는 채찍이라 생각하고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를 드린다.      코로나 19사태로 집에만 있으려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푸르른 숲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과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울긋불긋한 꽃들도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기다림’을 배웠고 아름다운 자연과 창조의 질서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 해보지 못했던 글쓰기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섬기고 있는 행복대학의 문예 창작반인 글여울 반에 등록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시와 수필을 쓰며 글자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열심히 듣고 배우며 걸음마 하듯 써나가는 글들이 내가 보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도 있었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 글짓기 숙제를 한 번도 제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교회의 제직이 된 후에 기도문 작성하는 것이 유일한 글쓰기였었다.   글쓰기를 하며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다. 글을 쓰고 나서도 좋은 글이 되도록 무수한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정제된 순금 같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글을 쓰며 느끼게 된 것은 비록 아직 초보의 수준이지만 새로운 자존감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물물이 퍼낼수록 계속 솟아오르는 것처럼 잊혔던 지난날의 일들도 더듬어 갈수록 내 기억 안으로 새롭게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잊고 지낸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          ━   시 부문 최우수상      ━   기다리기                             이태희    은빛 새벽은 어둠을 헹구고   아직 미진도 불허하는   열리는 아침 무대의 맨 앞줄에 앉아   오는 것 오는 모든 것   다 거절하지 않고라도   가는 것 가는 모든 것   다 붙잡지 않고라도   바위처럼 무던하게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팔월의 먹구름이   쏟지 않은 소낙비를 품고   낮게 드리워져 있듯   숨이 턱턱 막히는   젊은 날의 기다림은   비록 나에 취해서   나 자신을 잃어간다 하더라도   오직 일심으로 전념해 볼 일이다.     기다림은 사랑을 잉태하고   또 다른 하나의 삶을 맞이한다.   춥고 외롭던 시절마저도   곱게 펴서 다림질하고   살아있는 날까지   그리고 죽은 몸이 부활하여   다시 죽을 그 날까지   하나의 기다림을 간직하고 싶다.      냇물은 나날이 할 일이 있어.   들과 촌락들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저 물 같은 묵묵한 유연함의   유일한 사명이 있다면   지금은   그 심지에 귀명할 수 있는   생명의 불을 붙여야 한다.      물가에 나앉은 바위가   흔들리지 않는 일심으로   자신을 다스리며 엎디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내 혈관을 꿰뚫고 달리는   그 똑같은 생명의 흐름이   이 물속에서 흘러간다.      생명의 흐름이 흐르고 흘러서   저 침묵의 바다에 닿으면   들과 촌락들 사이로 나부끼는 눈발이 보인다.   서두르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쉬이 머리를 누이는 눈발이다.   막 시작된 겨울의 잠   깨어나면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사명을 위해   묵묵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이태희  출생 : 1964년 2월 4일  학력 : 동아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 한양대학교 기계공학 석사  활동 : 시작업동인  직업 : 회사원  거주 : 앨라배마 몽고메리     수상소감  오래전 앨범속에 숨어있던 결혼 축하 멜로디 카드를 열어 봤습니다.  전자 멜로디 음이 완전하진 않아도 멜로디 음이 가늘게 흘러 나왔습니다.  이처럼 나에게는 오랫동안 접어 두었던 또 다른 소중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 작업입니다. 그 일을 잘 알기에 수상 소식의 기쁨보단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제 다시 내 작업에서 혼을 불어넣고 색동옷 입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수상의 영광을 주신 애틀랜타 문학회와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학창시절 함께 고뇌했던 시작업 동인들과 지도해주신 신진, 강은교 교수님께 오늘의 감사를 돌려 드립니다.  오랜 시간동안 시 작업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다시 돌이켜봅니다.  옹기장이가 가마에서 구워 낸 옹기의 소리를 들어보고는 아닌 것은 깨어버리듯이 창작한 내 글들이 혼이 없고 살아있질 않아서 지워버리다가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오랜 기간 절필을 해 왔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창작을 할 수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합니다.  다시 창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속에서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애틀랜타 신인 문학상이 저에게는 혼이 담긴 옹기를 구워 내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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